예전의 난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가령 버스 안에서 기사가 내릴 손님을 못보고 그냥 출발할 때 큰소리로 내릴 사람이 있다고 알려줬었다. 참, 나서기를 좋아하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내 성격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나서지 않는다. 내 행동이 상대방의 배움이나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보니까. 상대방이 배울 삶의 기회를 내가 박탈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다. 늘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그렇다. 내가 돕는 것은 괜찮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난 같은 장애인이라고 과잉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그래서 마찰도 많이 생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아닌 건 아니니까. 장애인들은 국가적 관심과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왜? 비록 몸이 불편한 장애인 일지라도 국민의 한사람이기 때문.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정당한 권리인 것이다. 과잉친절은 이것을 가로막는다.
결국 그동안에 내가 나섰던 행동은 그들을 돕는다는 뜻이 있었으나 오히려 내가 그들이 깨우쳐 배울 기회를 박탈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당장 곤란한 입장에 놓이겠으나 그 고통의 몫은 당사자들의 것. 그러한 고통의 결과로 스스로 생각을 변화시키는 셈이다. 무조건적인 과잉보호는 그들 기존의 생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생각을 왜곡시킨다. 어떻게? 권리장전보단 거지근성을 키우는 것. 난 장애인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내가 아는 장애인단체의 대의원총회를 며칠 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난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느꼈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단체의 새 회장이 선출됐다. 헌데 이 회장은 부정부패와 비리의 장본인이었다. 신문기사도 여러군데 났었다. 문제는 장애인들이었다. 비리가 많고 문제가 많음에도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한다. 사실 그날 작은 충격받았다. 나와는 꽤 친한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또 내가 요즘 나가는 장애인단체의 사무국장도 그 회장과 법적싸움 중이라고. 헌데 검찰과 경찰, 공무원까지 비협조적이란다. 그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허나 이 앎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다. 겉으로 경찰과 검찰은 국민을 보호한다고 한다.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그 이미지는 180도 바뀐다.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즉 그때그때마다 기준이 바뀐다. 이 겉과 속이 다른 구조를 내일부터 몸소 체험해볼 예정. 그 장애인단체 회장을 알아보려 한다.
2008.10.19일 밤에
트랙백 주소 :: http://outsider24.net/trackback/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