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보면 이런 댓글이 있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라고. 할일없는 시민단체란 제목으로 보면 시민단체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문제는 댓글을 단 사람은 절대로 행동하지않는다. 다만 좋아진 세상에 슬쩍 무임승차만 할 것이다. 그 옛날 조국의 해방을 위한 독립군과 그를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된 친일경찰이 동시대를 사는 것처럼. 가치관에 문제가 많다. 역사적 분별이 사라진 혼돈의 시대다.

좋아진세상에 슬쩍 무임승차한 곳으로 언론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식민사관이라고 말한다. 일제시대 36년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형성된 역사관이다. 독립군들의 조국에 독립을 위한 헌신이 짚신취급을 받는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언론도 결국은 그런 식민사관으로 현재까지 온 것이다. 그 옛날 일본군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라던 수구언론의 글쓰기. 그후에 시민군의 자발적 궐기인 5.18을 폭도로 매도한 수구언론들. 친일사관의 영향받은 결과다.

그렇게 한번 형성된 의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제아무리 조중동을 논리적으로 논박하여도 독자는 계속해서 그 신문을 신뢰한다. 습관바꾸기가 어려운 것이다. 문제라면 우리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세력이 바로 수구언론들이다. 바로 그들에 의해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본다. 경제가 어렵다며 현대건설의 신화에 주목하게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허나 현대건설의 신화는 IMF때 공적자금 투입으로 깨졌다. 헌데도 다들 무관심하다.
2008.11.13일 밤에

시민단체들 "종부세 위헌 소송 기각" 호소==>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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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복지관사람들 2008년 11월 13일 21시 33분
오늘 팀장님과 이야기나누다 생각이 나서 기록한다. 처음에 복지관이 생기고 나서 엄청나게 비판을 하였다. 그때는 그것이 옳았다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요즘들어 난 그런 비판을 하지 않는다. 왜냐?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백프로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다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고, 난 그것을 비판했던 셈이다. 일하는 [방법]이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직원 개인이 못바꾼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의 조직은 상명하복의 수직체계다. 위에서 일을 시키면 아랫 사람은 무조건 해야만 한다. 그것의 옳고그름은 따지지도 않고 따질수도 없다.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도 있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유용한 방식이었다. 허나 지금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에는 인권이란 개념이 없었다. 불도저처럼 밀면 그만이었다. 헌데 지금은 인권의 개념이 확산됐다. 과거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가 통하지 않는 것. 이 차이다.

문제라면 그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을 바꾸는 건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기존에 비판위주의 시각에서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내가 얻은 건 복지관 직원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나 할까? 이러한 이야기를 하니 팀장님이 좀 놀라시던데. 복지관직원들이나 이용자들이나 서로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다. 또 복지비리의 당사자는 그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2008.11.13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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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나가는 시민단체]“주먹구구 회계 전문교육 실시”==>클릭!!

“시민단체 재정을 투명하게” 시민감사 도입을==>클릭!!

최근에 시민단체의 불투명한 조직운영이 밝혀졌었지요. 그로인해 말들이 많습니다. 또 거기다가 법적인 처벌까지 감수하겠다는 기사를 본 것 같습니다. 쉽사리 사그라들 분위기는 아닙니다. 또 이를 교훈삼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10월24일자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이 되었다고요? 이제부터 후원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투명한 재정운영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투명하지 않을 때 비리와 부정부패가 생기니까요.

사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이끌어내는덴 시민단체가 제격입니다. 우리사회에 시민단체가 갑자기 많아진 것도 정권교체 이후로 기억됩니다. 물론 시민단체가 다 옳은 것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시민단체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일단 그들의 활동이 낯섭니다. 또 이는 기득권의 이익을 방해합니다. 당연히 왕따시키는 분위기. 허나 시민단체는 활성화돼야 합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결국은 그런 시민단체의 일원입니다. 사회적 부당함과 권리를 주장하려면 당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당당함은 도덕적 우위에서만 나옵니다. 그러자면 투명하게 운영돼야 합니다. 사회적 부당함을 개선하겠다는 시민단체가 부패했다면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명하복식의 일방적 조직운영방식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인사구조에선 사람들이 수동적입니다.
2008.11.7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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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필자들이 수정 거부한 '금성 교과서' 법대로 처리하라==>클릭!!



조선일보의 11월4일자 사설이다. 법대로 처리하란다. 법!! 우리사회의 법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강자의 입장에서 보는 법이 있고 약자의 입장에서 보는 법이 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구조로 되어있다. 자칫 잘못하면 둘을 동일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중적 구조라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어쨌거나 위의 조선일보 사설은 한쪽으로 치우친 내용이다. 또 오늘날의 시대인식과도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즉 [인권]의 시대정신이 반영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일본에게 충성하라던 조선일보다. 이 말은 한편으로 보면 맞다. 왜냐? 당시의 국가는 일본이었으니까. 그 침략국에 맞선사람들이 곧 독립군이 된다. 한편으로 보면 그들은 체제를 거부한 사회불순세력들이다. 마땅히 붙잡아야 한다. 이 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보던 장면이다.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촛불시위]가 그렇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의 사관[史觀]으로 현재를 여전히 본다.

일제시대에는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국민은 머슴노릇해야 했다. 반면 권력은 주인노릇을 했다. 이러한 구조가 외세에 의해 해방을 맞았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이 땅에 뿌리내린다. 마땅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반쪽 민주주의]에 머무르는 까닭이다. 국민이 주인노릇할려면 그에 맞는 자격이 요구된다. 허나 위에 조선일보의 사설은 그 범위를 벗어났다. 법대로 처리하라는 건 독립군을 신고하라는 것과 같다. 이건 머슴의 몫이다.
2008.11.4.새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난 이 나라의 주인이 됩니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참여하면 난 머슴에 불과합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난 당당한 주인공이 됩니다.
소극적으로 마지못해 참여하면 난 노예일 뿐이죠.

부조리한 세상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그대가 적극적 참여를 주저하 듯이 그들도 주저합니다.

그대가 머뭇머뭇거리면 그들도 머뭇머뭇할 수밖에요.
결국 그대가 참여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안변합니다.

사실 어떠한 일에 참여한다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지요?
허나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걸 귀찮아합니다.
2008.11.2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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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구조조정 가시화 되나?==>클릭!!
금융 ‘공포 드라마’ 끝났나… 한·미 통화스와프 대형 호재로 주가 폭등·환율 폭락"==>클릭!!


우리사회의 경제가 안좋다고 난리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경제위기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오는 것인가?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는 것이다. 즉 경제위기를 부르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 순위다. 그런데 위의 기사는 내부의 문제를 무시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내부의 문제는 그대로 있다. 해결할 기미도 없고, 생각도 없다.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못된다. 단지 시간만 연장시킬 뿐이다. 고통만 연장시키는 것이고.

우리사회는 지난 IMF사태에서 배운 것이 없다. 단지 요령만 익혔을 뿐이다. IMF가 왜 일어났는지를 모른다. 따라서 경제위기의 원인은 우리사회 내부에 잠복해 있다. 그것이 언제쯤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영향으로 경제위기가 왔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허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어떠한 상황은 짧은 시간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문제의 원인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친숙하며 습관으로 몸에 굳어졌다.

물에 빠진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란 속담이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IMF를 졸업하게 해주니 그에게 돌을 던진다. 그러다가 그사람이 다시 물에 빠졌다. 이젠 아무도 그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구해줘봐야 나중에 돌만 맞을 것이므로. 또 본인의 무엇이 잘못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 과정은 고통으로 얼룩지게 된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것처럼. 이제 남은 건 고통을 통해 우리사회의 잘못된 사회질서를 이해하는 것. 알아야 고칠테니까.
2008.10.30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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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면 시끄럽고 떠들썩하기 마련입니다.
헌데 이곳은 너무나 조용한 것이 침묵만 도도히 흐를 뿐입니다.
우리 모두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의 이러한 참여를 우리사회는 반가워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참여정부도 이러한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다 끝났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기득권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았지요.
자, 우리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합시다.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 속엔 그대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그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2008.10.28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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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난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가령 버스 안에서 기사가 내릴 손님을 못보고 그냥 출발할 때 큰소리로 내릴 사람이 있다고 알려줬었다. 참, 나서기를 좋아하던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내 성격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나서지 않는다. 내 행동이 상대방의 배움이나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보니까. 상대방이 배울 삶의 기회를 내가 박탈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다. 늘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그렇다. 내가 돕는 것은 괜찮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난 같은 장애인이라고 과잉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그래서 마찰도 많이 생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아닌 건 아니니까. 장애인들은 국가적 관심과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왜? 비록 몸이 불편한 장애인 일지라도 국민의 한사람이기 때문.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정당한 권리인 것이다. 과잉친절은 이것을 가로막는다.

결국 그동안에 내가 나섰던 행동은 그들을 돕는다는 뜻이 있었으나 오히려 내가 그들이 깨우쳐 배울 기회를 박탈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당장 곤란한 입장에 놓이겠으나 그 고통의 몫은 당사자들의 것. 그러한 고통의 결과로 스스로 생각을 변화시키는 셈이다. 무조건적인 과잉보호는 그들 기존의 생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생각을 왜곡시킨다. 어떻게? 권리장전보단 거지근성을 키우는 것. 난 장애인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내가 아는 장애인단체의 대의원총회를 며칠 전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난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느꼈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단체의 새 회장이 선출됐다. 헌데 이 회장은 부정부패와 비리의 장본인이었다. 신문기사도 여러군데 났었다. 문제는 장애인들이었다. 비리가 많고 문제가 많음에도 그를 맹목적으로 지지한다. 사실 그날 작은 충격받았다. 나와는 꽤 친한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또 내가 요즘 나가는 장애인단체의 사무국장도 그 회장과 법적싸움 중이라고. 헌데 검찰과 경찰, 공무원까지 비협조적이란다. 그것은 익히 아는 바이다. 허나 이 앎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다. 겉으로 경찰과 검찰은 국민을 보호한다고 한다.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그 이미지는 180도 바뀐다.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즉 그때그때마다 기준이 바뀐다. 이 겉과 속이 다른 구조를 내일부터 몸소 체험해볼 예정. 그 장애인단체 회장을 알아보려 한다.
2008.10.19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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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는 불법? 침묵은 합법?

의식개혁 2008년 10월 14일 19시 43분

 



장애인계 내부의 적이 많다. 시설장들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대표적이다. 또 과거처럼 데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장애인들도 많다. 이와 관련해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 언론들이 제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문제투성이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산넘어 산이다. 하나의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있다. 이건 끝이 없다. 우리사회의 문제도 이와 같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즉 문제덩어리며 부패덩어리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도 예전에는 조용했으나 지금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조용히 넘어갔으나 지금은 다 밝힌다. 권위주의시절의 데모는 불법이었다. 헌데 시대가 바뀌더니 데모는 국민들의 권리인 것이다. 즉 오늘 날엔 합법이다. 그러나 과거의 잣대로는 불법이다. 독재시절에는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허나 요즘엔 인권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이 가치관의 변화를 언론들은 그저 침묵만 한다. 그러니 혼란스럽기만하다.

즉 시대의 가치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러니 위의 경우처럼 옳고그름을 분별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저런 사람은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숫가락만 들고 올라가는 경우다. 집회의 자유는 고유한 자신의 권리임을 모른다. 시대에 무임승차한 경우다. 이 기준을 우리사회의 언론에다 디밀면 그들도 무임승차했음을 알 수 있다. 뭐 이해하긴 쉽지가 않겠지만... 오늘날 밝혀지는 우리사회의 부조리도 언론들의 침묵과 방관 속에서 가능했다. 2008.10.14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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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정의?

사법개혁 2008년 10월 13일 21시 17분

"멜라민 때는 왜 안나왔나" vs "유모차 수사는 공안정국"==>클릭!!

<국감현장>김석기 청장, "배후세력에 선동된 유모차부대도 있어"==>클릭!!

김석기 청장, “촛불집회는 철저히 기획된 좌파집회”==>클릭!!

정의의 뜻을 웹사전에서 찾아봤다. 정의.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란다. 사회적 정의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가 지킬 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촛불집회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폼을 보면 극과 극을 달린다. 한쪽은 여전히 이념의 잣대로만 본다. 그러나 다른 쪽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우리사회가 사회적 합의를 건너뛰고 변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의 거품이 일어난다. 현재는 과거같은 어두운 냉전의 시대도 아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니까.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변화를 맞았다. 이것이 요즘 자꾸 과거의 독재시대로 가려는 이유다. 과거의 독재시대는 공권력이 남용되었다. 인권의 개념도 없었다. 당연히 인권탄압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누군가?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던 친일경찰의 후예다. 최근 이런 경찰의 모습도 10년동안 많이 변했었다. 서민들에 의한 경찰서습격사건도 꽤 많았다. 경찰은 서민의 주인이 아니라 머슴이라는 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정권교체가 됐다.

다시 경찰이 과거처럼 국민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과거의 왜곡된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머슴일 때의 정의가 있다. 또 국민이 주인일 때의 정의가 있다. 정의는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경찰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헌데 우리의 경찰은 국민을 머슴으로 대했던 역사가 너무 길었다. 저들의 행동이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태도도 아니다. 대단히 예의없어 보이니까. 2008.10.13일 밤에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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