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자세
언젠가부터 세상이 변화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가속도가 붙더니 급기야 현실과 생각의 세계도 분리되었다. 그래서 현실 따로, 생각이 따로인 시대가 되었다. 우리사회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도 여기에 존재한다. 기존에 익숙함을 긍정한다면 보수주의로 가고 익숙함을 부정한다면 진보주의로 갈 것이다. 세상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변화됐고, 또 앞으로도 변화될 것이다. 현실세계는 빨리빨리 변화됐지만 생각이 못따라가는게 문제.
그래서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되었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오늘의 친구가 내일이면 적으로 둔갑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좋으나싫으나 우리의 생각은 변화대는 현실을 따라가기에도 힘들다. 그 변화되는 생각의 옳고그름을 따질 시간적 여유도 없다. 어떤 기준에서 본다면 마치 혼란스러워보이기도 한다. 마침내 세상이 변화된 것이다. 과거 획일주의의 세상이 다양성의 사회로 변화된 것이다.
이 변화가 우리사회의 [잃어버린 10년]동안에 일어났었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그 과거가 언제였던가? 독재자가 날뛰었던 그 시절이다. 허나 우리사회의 정신적 버팀목은 침묵을 한다. 우리사회의 정신적 버팀목이 부실하다는 증거다. 이런 이유로 현재 우리사회가 더 어수선해 보인다. 그럼에도 [조중동]과 같은 친일사관의 신문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익숙함을 팔고있다. 변화의 시대에 익숙함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2009.3.24.밤에
익숙함에 중독된 우리사회...
예전에 김기호 전회장이 있던 복지관을 자주 이용했었다. 당시 그곳에서 기획팀장으로 있었던 사회복지사가 한명 있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당시 그 기획팀장은 복지관 회장을 성심성의껏 떠받들었다. 오죽하면 이용자인 장애인들보단 복지관회장을 더 지극정성으로 섬긴다며 나와 의견충돌도 있었다. 섬김의 대상은 인사권자가 아니라 장애인들이다. 허나 현실은 이와는 반대다. 왜 그럴까? 섬김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은 주인이고 권력은 머슴노릇하는게 올바른 민주사회의 구조일 것이다. 허나 우리 사회의 구조는 국민이 머슴노릇하는 구조다. 아, 최근 10년동안 국민이 주인대접을 받았었다. 물론 이 기간을 기득권세력은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다. 현재 지금의 혼란스런 상황은 기득권세력이 [되찾은 10년]의 결과인 셈이다. 이 구분을 알기 위해 기존의 익숙하게 생각하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린 익숙한 것에 중독됐다.
익숙한 것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준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주어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낯선 것과 마주치면 괜히 흥분한다. 중독되었다는 이유인 셈이다. 무엇에 중독되면 일단 판단력이 흐려진다. 우리사회는 현재 커다란 무엇인가에 중독돼 있다. 그래서 앞으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뒤로 가고있다. 현재로는 이것을 분별하는게 어렵다. 우린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식이 불가능하다. 2009.3.23.밤에
권위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
우리사회가 많이 변화됐으나, 아직 변화되지 않은 곳이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문화에 있다. 문화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지장협의 홈페이지도 비판의 소리엔 귀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삭제가 능사는 아니란 뜻. 삭제가 문제해결보다는 문제를 더 키운다. 그 삭제에 기분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삭제해도 괜찮았던 건 아무도 삭제행위를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묵시적 방관자다.
헌데 이러한 문제해결 방식은 과거 권위주의로 올라간다.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였다. 이것이 우리사회의 근대역사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고 침묵하게 되었다. 독재권력에 그렇게 길들여진 셈이다. 현재 이곳의 게시판도 침묵할 뿐이다. 오히려 부정부패의 당사자들이 봉기하기를 주장할 뿐이고. 독재자는 사라졌으나 그들을 섬기던 조직문화는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권위주의.
과거 권위주의는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했다. 이런 조직문화가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시키는 일외에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 것.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조직문화에선 능동적인 사람은 나올 수 없다. 능동적인 사람은 스스로 움직인다. 일의 효율성과 창조성도 이러한 가운데 나타날 듯싶다. 맹목적인 복종이 자발적인 복종으로 변해야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어떻게? 기존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 2009.3.21.밤에
우리의 정의와 저들의 정의
정의의 뜻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찾아보니 이렇게 웹사전에 나온다. 이쪽에서 보는 정의와 저들이 보는 정의가 이름은 같으나, 의미가 서로 다르다. 사용하는 언어만 같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서 모순이 일어난다. 이 모순을 이해 하지 못할 때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게 된다. 또 쉽게쉽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정의만이 진리라고 우긴다. 착각하는 셈. 세상을 보는 눈을 스스로 가리는 것이다.
서로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만 바라본다. 그것은 절대 기준이 아니다. 그런 주관적 견해를 객관적인 사실로 혼동하는 것. 아래에 보면 정의를 부르짖는 글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봉기하길 촉구한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경우에 행동하기 마련이다. 즉 저 사람의 저런 행동엔 자기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쉽게말해 기득권을 지키는 쪽이다. 복지계의 기득권이 무엇인가? 바로 부정부패인 것.
내가 올린 복지비리의 동영상을 매번 삭제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비판과 견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니 듣기싫은 소리를 즉각즉각 삭제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봉사하지 않고 군림해도 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것이 습관으로 고착됐을 뿐이고. 저들이 보는 사실과 우리가 보는 사실은 서로가 다르다. 보고싶은 것만 보니까. 객관화가 필요하다. 2009.3.20일 밤에
클릭1을 클릭하면 2009.3.14일의 그것이 알고싶다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 동영상을 저번처럼 못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땐 클릭2를 클릭하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 페이지로 갑니다. 그곳에서 [왜! 나랏돈은“눈 먼 돈”이 되는가?]를 보시면 됩니다. 좀 번거롭긴 하겠으나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무관심하니 내가 낸 세금은 눈먼 돈이 됩니다. 앞으로도 국민들이 관심갖지 않으면 계속해서 눈먼 돈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땀흘려 낸 세금을, 누군가는 열심히 땀흘려가며 흥청망청 쓰고 있는 셈이죠. 2009.3.19
줄줄 새는 복지예산-PD수첩-2009.3.15
어젯밤에 한 PD수첩. 우리사회 구조적 결함의 일부분일 뿐...
지장협의 현재 모습도 이러한 시대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고.
아래를 클릭하면 새창이 나타날 것이며, 거기서 동영상보기를 클릭! 무엇을 설치한다고 하면 예를 클릭. 클릭1 2009.3.16
이 동영상을 누군가가 못보게 해놨네요.
그는 필시 기득권세력일 겁니다. 찔리는 구석이 많은가 보죠.
이 동영상을 다른 곳에다 올려 다시 링크겁니다.(현재 작업 중...잠시 후에 다시 보세요.)
만약에 이 동영상도 못보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번거롭긴 하겠으나, 아래 링크된 [클릭]을 클릭하면 MBC 2580 다시보기로 갑니다.
그곳에선 회원가입하셔야 다시보기가 됩니다.
세상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선 그정도의 노력은 하셔야 합니다.
밑에 [26억 꿀꺽, 복지예산은 눈먼 돈?]이란 부분 밑의 [일반]을 클릭!
그리고 설치한다는 표시가 뜨면 예를 클릭!
그리고 감상하세요.
아래를 클릭하면 새창이 나타날 것이며, 거기서 회원가입 후 동영상보기! 무엇을 설치한다고 하면 예를 클릭.
불확실성과 변화의 바람
어제까지만 해도 확실하던 것이 오늘은 불확실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참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오늘은 거짓이란다. 그동안 옳았던 진실이 사실은 허구였단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이 현재 지장협의 홈페이지에서 펼쳐지고 있다. 너무 시끄럽다며 자제하길 요청하는 글도 올라온다. 이쯤되면 어느정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일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가 보이는 혼란스런 상황과 비슷하다.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면 아직 멀었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본질이다. 그런데 생각의 전환이 쉽게 일어나는가? 생각을 바꾸기 위해선 물리적 충격이 요구된다. 인식의 벽을 뚫어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요구한다. 익숙한 것이 사라지고 낯선 것이 새로운 인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마땅히 시간이 소요된다. 사실은 숙성되는 셈이다. 정신적으로 낯선 건 우리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왜? 늘상 보던 것만 보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겉으로 보이는 지장협의 모습은 아주 흉하다. 보기에 역겹다. 지저분하며 고약한 냄새도 난다.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 실추도 걱정한다. 그러나 속으로 골병든 가치관의 변화를 위해선 필수적이다. 입만 열면 장애인의 복지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복지비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즉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구조다. 공공의 복지비용을 단체장이 착복해도 괜찮은 구조였다. 이것을 바꾸는 작업이다. 저들이 순순히 승복하리라 믿나? 2009.3.14.오후에
도덕성이 추락해야 도덕성이 회복된다.
현재 상황이 아주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것이다. 기존에 기득권세력의 눈으로 보면 단순히 밥그릇싸움일 뿐이다. 또 조금 변화를 갈망하는 눈으로 보면 한번은 치뤄야 할 과정일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해선 안될 것이다. 즉 눈으로 안보이는 것이 배후에 존재한다. 이것은 가치관 문제다. 옳고그름의 가치를 따지는 문제다. 행동을 통제하는 도덕성의 문제다.
현재 우리사회는 도덕성이 사라진 현실을 살아간다. 마땅히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곳의 게시판이 시끄러운 것도 도덕성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 옳고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참과 거짓을 혼동하는 것. 양심적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이상한 행동으로 비춰지는 우리사회. 이곳은 우리사회의 축소판과 같다. 머리는 있으나 생각이 없다. 생각은 있으나 반성이 없다. 문제는 과거 획일적 시대에서 다양성의 시대로 왔다는 점.
시대가 바뀌면 보통은 생각도 같이 변화된다. 허나 우리사회의 생각은 이미 고정돼 있다. 이 생각과 생각이 모여 가치관을 이룬다. 친일파와 독재자의 가치관을 청산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에 살아남는 법은 눈치가 빨라야 했다.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우리사회의 곳곳에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이런 불협화음은 필연적이다. 주인이면서 그동안 머슴노릇한 건 그것을 악용하던 이들이 있어 가능했고. 2009.3.10.오후에
비판과 견제를 통한 균형의 시스템...
현재 지체장애인 협회의 혼란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우리들 스스로가 이뤄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은 사전에 예고된 것이다. 시행착오의 결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다. 단지 해방과 함께 그냥 주어졌을 뿐이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해방 이전의 시대를 생각해보자. 그때가 언제였나? 일제시대였었다. 그 이전의 시대는? 조선시대였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불가능했던 시대였다.
민주주의란 제도는 비판과 견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안다. 이번 협회의 경우도 이 비판과 견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비판과 견제는 우리정서에도 안맞는다. 비판을 통한 견제보다는 차라리 침묵을 지킨다. 오랜 독재 시절에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좋은게 좋은거라며 은근슬쩍 넘어간다. 다들 거기에 동의한다. 그렇게 부정부패에 동참하는 것이다. 지체장애인협회의 이번 사태도 비판과 견제기능이 제구실못했다.
비판과 견제기능이 없으면 그 조직은 사유화 된다. 이번 지체협회의 경우도 비판과 견 제기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회장이 부정부패를 일삼아도 견제기능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말을 뒤집어보면 중앙회 역시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 것. 중앙에서 지회를 관리할테니까. 우리사회는 민주주의로 운영된다. 그러나 비판과 견제기능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법치주의가 아니라 인치주의가 여전히 유지되는 까닭이다. 2009.3.7.밤에